겸상 (兼床) 에 대한 의외의 이야기들. 부제:혼밥(독상)은 유서깊은 전통문화

겸상. 혹은 독상.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계신가요?


제일 흔한 이미지가 '우리집은 뼈대 있는 집안이라 남녀간에 겸상 안한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흔히 말하는 남녀차별, 며느리 개고생의 이미지가 짙게 깔려있는 이 말은....


결론만 말씀드리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상을 받는 문화는 나름대로 '필요'에 의해서 발전했고 그때의 문화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 당연시 되었던 것이므로 모든것이 변하고 일반적인 가족 구성원의 수, 혹은 개념마저 변해버린 지금까지 적용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멍청하다'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잖아요?


그럼 먼저 독상, 즉 소반에 혼자 먹는 밥과 반찬을 받는 문화는 어떻게 생겼는 지 알아보겠습니다.



1. 유교적 문화의 영향 - 남녀유별

유교적 색채와 더불어 명분이 가장 중요시 되었던 우리나라는 성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하고 금기로 여겨 왔습니다.

따라서, 밥을 먹을 때도 여자들은 사랑채나 별채에서 따로 상을 받아서 밥을 먹었습니다. 

흔히 말하듯이 부엌에서 먹은건 아니에요. 

( 부엌에서 밥을 먹었던 사람들은 노비, 하인들이었습니다 )


2. 유교적 문화의 영향 - 격대교육

조선시대를 포함하여 그 이전의 사회는 농경기반의 사회이고, 자식교육은 격대교육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교육시킨다는 뜻이죠. 아버지가 아들을 교육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농사일을 나가든지, 아니면 과거급제를 위하여 공부에 전념해야 했기 때문에 자식 교육을 시킬 시간은 사실상 없었기 때문입니다. 안그래도 어려운 부자 관계인데,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낼 기회가 잘 없었으니 나중에는 어마어마하게 무섭고 어려운 사이가 됩니다. 

이러한 이유 덕분에, 아버지와 아들이 겸상하는 것은 금기 중에서도 금기였었습니다.


3. 집 구조의 형태 - 초가삼간

초가삼간, 혹은 삼간초가의 뜻은 '세칸밖에 안되는 작은 초가' 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집들이 이 초가삼간을 벗어나지 못했죠. 따라서 '식당'이란 공간은 없었습니다.

좁은 방 몇개로, 밥먹고, 공부하고, 잠자고, 놀고 등등을 모두 해결해야 했으므로

빈 방에다가 접었다가 폈다가 할 수 있는 세간살림과 이를 이용해서 그때 그때 해결하는게 훨씬 효율적이었습니다.

( 우리나라에 침대문화 혹은 침실이 없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

따라서,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각 방으로 배달을 해야 하니 큰 상을 옮기지는 못하고, 1인분씩 차려서 옮기는 것이 효율적이고 편합니다. 

간혹, 겸상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 할아버지 + 손자 혹은 친구들의 경우 ) 방 안에 미리 큰 상을 하나 펴 놓고 작은상에 음식을 담아 퍼다 나르는 식이었습니다.


4. 집 구조의 형태 - 온돌문화

우리 문화의 자랑으로 온돌을 많이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온돌은 방이 작을 때 그 효율이 높습니다. 넓으면 넓을수록 효율을 뚝뚝 떨어지지요.

따라서, 아무리 대감집이라 고래등같은 기와집을 짓더라도 온돌에 의한 난방을 생각한다면 방 크기는 제한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tour.jeonju.go.kr/index.9is?contentUid=9be517a74f72e96b014f826426080304


결국 집 자체는 크다고 하더라도 작은 방이 수가 많다는 것이 됩니다. 결국 방에 앉아서 독상을 받아야 하는 형편이 되는 거지요.


5. 우리네 조상들은 푸드파이터 -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푸드파이터

좀 재밌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시아 국가들 중 한끼 식사의 양이 가장 많은 나라인 것으로 유명합니다.


당시의 우리나라는 면적 대비 농사 효율이 극히 높은 나라 중의 하나였는데, 그 많은 곡식들은 모조리 먹어 없애는게 가능한 먹돌이 국가였습니다.

우리나라 한끼 분량의 식량으로 일본에서는 하루 혹은 이틀을 먹는게 가능한 정도였지요.



저 무시무시한 밥그릇과 국그릇을 보시면.... 지금의 한국인들이 먹는 양의 3~5배는 족히 되는 양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어른을 공경하는게 가장 큰 기치였던 세상인데, 겸상을 하게 되 버리면 어른이 맛있는 것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버립니다. 맛있는 음식이 들어오거나 귀한 음식이 생기면 제일 먼저 집안의 가장 어른이 먼저 맛을 보고, 그 다음 다음으로 내려오게 되는데, 겸상을 하게 되면 그게 불가능 해집니다.

따라서, 독상을 받는다는 것은 어른을 공경하는데 좋은 방법 중의 하나였던 셈입니다.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야생에서도 비슷한 경우는 많이 발견됩니다.

무리를 지키는 우두머리나 전투나 사냥을 도맡아 하는 구성원들이 가장 맛있고 영양가 있는 부분을 제일 먼저 먹게 되지요. 저 시대의 어른에게 가장 좋고 맛있는 부분을 먼저 대접한다는 것은 그 가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는 뜻과도 같습니다.



PS. 그 당시 잡일들은 모두 노비가 했었습니다. 음식 차려 나르고, 설거지하고 이런 것들도 당연히 했었죠. 따라서, 이런 형식을 지키는 양반집에서는 불편함 때문에 형식을 축소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에서 떠돌아 다니는 겸상에 관한 일화가 조금 소개되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일화이긴 합니다만, 여기에서 초점을 맞출 것은 잔소리때문에 겸상을 안했던 것이 아니라

아들과 아버지가 겸상을 할 정도로 무지했던 집안으로 생각했기에 정상참작을 했다 라는 부분입니다.

너무나 무지했기에 벌어진 일 쯤으로 생각하고 봐준다는 뜻이지요.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부자지간에 겸상한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예법이거든요.

( 잔소리 때문에 겸상을 안했다는 것은 재미를 위한 거짓말입니다 )


어쨋든, 독상을 받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발전한 우리의 문화이지만, 이것을 남녀를 구분하고 여자를 하대하는 것의 방편으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Ps. 요즘들어 혼밥, 혼술이 인기가 있던데, 사실은 몇천년 전부터 해오고 있던 전통문화입니다.(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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