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후기 -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 급성 골수성 백혈병 (ALL, AML)

어떤분의 이야기 인지는 모르나 진단 후, 항암치료, 무균실에서의 행적과 감정을 세세하게 적어주신 글입니다. 막연히 헌혈증이 가장 많이 필요한 병이다 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유가 있는거군요.

뒷 이야기는 구하지 못했습니다. 진행중인지, 완치가 되셨는지.. 부디 완치 되었길 빕니다.

백혈병에 걸리다. 

때는 2013년이었어.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이지.

그때 나는 대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 휴학을 냈어. 신검 1등급으로 육군에 입대할 예정으로 말이야.

11월 25일 군입대를 기다리며 알바를 했었어. 피시방 야간 알바였지.

그렇게 한창 알바를 하다가 그만뒀는데, 몸이 너무 안좋은거야.

분명 피시방에서 밤새면서 게임해도 거뜬하고 그랬었는데, 그 때는 두세시간만 해도 피곤하고 좀 걸으면 숨차고 그랬어.

몸살 감기라도 걸렸나 싶어서 동네 내과에 갔지.

예상대로 감기약을 처방해주더라고. 효과가 없으면 일주일 후에 다시 오라고했어.

그런데 이주일이 지나도 이게 나을 생각을 안하는거야.

다들 그런 느낌 한 번 씩 느껴봤을 거야.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딱 그랬어. 평소와는 다르다는걸 직감했지.


그래서 군 입대를 이틀 앞둔 시점에 다시 한번 내과를 찾아갔어.

의사가 이번에는 피검사를 한 번 해보자고 하는거야. 그래서 나는 알겠다고 하고 피를 뽑고 결과를 기다렸지.

그리고 바로 다음날. 의사한테서 바로 연락이 왔어. 부모님을 함께 모시고 방문을 해달라고 했지.

이 때 예상했어.  아 검사결과가 심각하게 안좋구나. 뭔가 큰 일이 터지겠구나.

그렇게 부모님과 함께 진료를 보러 갔지. 그런데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의사가 나보고 잠깐 나가 있으라는거야.

아니 내가 당사자 인데 잠시 나가달라니. 나는 이제 성인이고 내가 알만큼 안다는 것을 부모님도 알기 때문에 엄마가 자리에서 그냥 말하라고 하셨어.

3년전이지만 기억나는대로 써볼게. 의사가 말하길


"지금 군입대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검사결과가 매우 안좋습니다. 백혈구 수치가 너무 높고 모양이 이상해요. 아무래도 백혈병이 의심됩니다. 소견서를 써드릴테니 지금 당장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보세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주시고요"


의사가 의심된다고는 말했지만, 말은 거의 확진하는 말투였어. 혈액검사 결과지를 받았는데,

온통 영어에다가 단위는 마이크로 밀리리터 이런식에다가 의학상식도 없었기때문에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몰랐지.

그때 수치를 기억하자면 일반인의 백혈구 수치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6000~12000 뭐 이정도야.

근데 그때 내 백혈구 수치는 자그마치 15만이었어. 백혈구는 좋은 녀석이지만 많다고 마냥 좋은 건 아니야.

설명충이 되는 것 같지만. 간단하게 백혈병은 늙고 기능이 떨어진 백혈구가 많아져서 면역력이 떨어지는 병이야.

그리고 그대로 내과를 나와서 엄마 차를 타고 일단 집으로 갔어.

장기간 입원해야 될 것 같으니 이것 저것 챙기려고 집에 들렀다 가려고 했지.

그런데 엄마가 집앞에서 차를 세우더니 여기 저기 전화를 해보는거야. 아는 사람들한테 이것 저것 물어보신거지. 

우리집은 인천인데, 그때 가까운 큰 병원은 길병원 이었어. 집하고 거리도 얼마 안됐지.

당연히 거기로 갈 줄 알았는데, 엄마가 거기로 안가더라고.

서울에 있는 강남 성모 병원이 백혈병 치료를 잘한다는 얘기를 들은 모양이야.

이 때 엄마의 선택은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선경지명 이셨지.


그렇게 나는 나이 만 20세에 백혈병 치료를 하러 서울에 갔지.

그 때 나의 심정은 하늘이 무너진다거나 그런 마음이 아니었어. 평소에 내가 생각이 많기도 하고 그래서 인지

사람은 날 때 순서는 있어도 갈 때 순서는 없다는 걸 일찍이 깨닫고 있었고 멘탈도 긍정멘탈이이었지.

병에 걸리는 사람들은 지구 어디에나 있고, 그게 꼭 내가 아니란 법이 없다는 걸 인식하고 있었지.

당시 느낌은 " 아 내가 백혈병에 걸렸구나"

그냥 이 느낌이었어.

응급실

그렇게 서울에 있는 성모병원에 가기로 결정하고 이것저것 챙기러 먼저 집에 들렀어.

아빠는 일하고 계시느라 바로 오시진 못했지.

그런데 엄마도 적잔히 충격을 받으셨는지 친구분께 전화를 해서 운전 좀 대신 해달라고 하더라고.

그도 그럴것이 자기아들이 백혈병에 걸렸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엄마가 세상에 어디있겠어.

떨리셨는지 자기가 운전을 하게 되면 사고라도 날까봐 무섭다는 거야.

그렇게 나는 친구분의 차 뒷자석에 앉아서 성모병원으로 향했어.


가는길에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백혈병에 걸렸구나. 만에 하나 잘못되면 죽을 수도있겠구나.

아니, 만에 하나가 아니지 백혈병 치료가 많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망률이 꽤 높아.

완치율이 높아졌어도 백혈병은 지금도 죽을병이라고 말할 정도는 되는 큰 병이지.

뒷자리에 앉아 핸드폰으로 백혈병 검색도 해보고 이것저것 찾아봤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성모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어.


응급실이라고는 하지만 대학병원이기때문에 응급실에는 보통 예약을 하지않고 찾아온 환자들이 대부분이야.

그렇기 때문에 접수를 하고 기다려서 진료받는 수속을 밟지.

꽤 기다렸을거야. 내 차례가 되서 진료실에 들어갔어.

두명이 앉아있더라고. 어떻게 오셨냐고 묻기에 내과에서 받은 소견서를 내밀었지.

한 명이 소견서를 받아보더니, 옆에 사람을 쳐다보고는 작은소리로 이렇게 탄식을 내뱉었어.

"ALL..."


ALL은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의 영어약자야. (AML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으니까 다시 한 번 내가 큰 병에 걸렸다는게 실감 나더라.

그리고 나선 피검사를 다시했어. 대학병원은 자신들이 한 결과만을 믿는 것 같아.

그래서 피검사 결과지가 있음에도 새로 피 검사를 했지.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난 후에 결과가 나왔어. 백혈병이 확실했지.

자세한 건 골수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피검사만으로도 백혈병이 확실했어.

골수검사로는 정확한 계열, 종류, 정도 뭐 이런것 까지 자세하게 파악하기 위함이지.

결과가 그렇게 나오니 내과에서 받은 진료가 잘못 된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백혈병이 아닐수도 있다.

뭐그런 한가닥의 희망조차 사라지게되었지.


그런 다음 나는 응급실에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이동식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옮겨 다녔어.

이제는 모든 걱정, 생각을 버리고 치료만 잘받자라는 마인드를 가졌지.

그 때 제정신이 아닌터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다만 기억나는 건 백혈구를 일단 걸러내기 위해 피를 투석? 하는 과정을 거쳤지.

바늘을 꼽고 몇 시간동안 침대에 누워있었어.

그리곤 골수 검사를 했지. 그날했는지 다음날 했는지 기억은 잘 나지않지만 아무튼 골수검사를 했어. 

골수 검사를 하고 나니 정확한 진단, 병명이 나왔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필라델피아 양성 이었어.

1편의 증명서를 보면 Ph(+)라고 되어있지. 그게 필라델피아 양성이라는 의미야.

필라델피아 염색체가 있는데 뭐가 어쩌고 저쩌고...


아무튼 그 날은 그렇게 응급실에서 하루를 보냈어.

입원실이 꽉차서 어쩔 수 없이 응급실 침대에 누워서 기다려야했지.


일단 리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 긴 대장정을 언제, 또 어떻게 이어나가고 끝내야 할지를 모르겠어.

내가 장기기억력이 좀 딸려서 다 기억이 나지않는데도 쓸 내용이 너무 많아.

궁금한 건 댓글로 부담갖지말고 댓글로 달아줘. 전부 다 얘기해 줄수 있어.

가령 골수검사가 아프다는데 얼마나 아프냐는 질문 같은 것도 포함해서 말이지.

사실 골수검사가 아프긴 한데, 그렇게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 

주사주제에 마취주사까지 하고 검사하긴 하지. 애초에 골수에 바늘을 꼽꼬 빼내는 작업이라 아픈게 당연해.

남자 두명이서 힘 꽤나 써야할 정도니까 당연히 아프겠지.

골수검사를 이 때까지 여러번해봤는데 그 때마다 이따금씩 옆방에서 소리지르는 소리가 들리곤 하지.

어린애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른들도 아프다고 소리질러.

통증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어. 겪어봐야만 아는 통증이랄까.

이게 의사스킬이 또 중요해서 병원마다 잘하는 곳이 있어. 성모병원은 베테랑들이어서 능숙하게 잘하는 가봐.

입원중에 엄마가 골수검사하는 장면을 한 번 지켜본적이있는데 사람이 볼 만한 장면은 아닌가봐...

다음편에 이어서 계속 쓸게.

입원
응급실에서 잠깐 있다가 입원실이 나서 병동으로 올라갔어. 6인실 이었지.
백혈병도 일종의 암이야. 암 카테고리에 포함된다는걸 모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혈액암에 속해.
그래서 나는 혈액내과 병동에 올라갔지. 성모병원은 기억으론 18-19층이 혈액내과 병동일거야.
20층에는 무균실이 있고 21층이 꼭대기인가? 아무튼 꼭대기 층은 VIP 층이지

강남 성모병원은 한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혈액암치료로 알아주는 곳이야.

그래서 중동 석유부자들도 많이 와서 치료를 받아. 히잡을 쓰고 이슬람 특유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

조혈모세포이식으로는 정말 유명한 곳이라 전국 각지에서 치료를 하기 위해 이 곳에 와.

치료를 위해 부산에서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주도에서 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

아무튼 그 때 이병원을 선택한 건 정말 탁월한 초이스 였어.

다른 병원에서 치료하다가 뒤늦게 이 병원으로 찾아 오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병동에 입원했어.

내가 금수저가 아니었기 때문에 1,2인실 말고 6인실을 쓰게 됐지. 내가 가장 젊었어.

그도 그럴게 만20세란 나이었으니 막내가 되기에 부족할 나이는 아니었지.

사실 내가 막내라는 것에는 크게 연연해하지 않았어. 병걸리는데 나이가 큰 기준도 아니고

늙은사람이 있으면 젊은 사람도 있으니까. 그게 나라고 예외는 아니지. 젊으면 잘 버틴다고 하니까 오히려 

다행스럽게 느꼈다고 해야되나. 낯을 많이 가려서 병실 환자분들과 가깝게 지낸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낯선 환경에 적응해 나갔지.

그 땐 다른 생각없이 의사, 간호사분들이 하란대로 하면서 잘 치료되기만 바라는 마음이었어.


입원해서 가장 먼저 했던 것 중 기억나는 건 중심정맥관 삽입 수술이었어.

영어로는 히크만 카테터 라고하는데 간호사들은 보통 히크만 으로 불러.

이게 뭐하는 수술이냐면 말그대로 대정맥에 관을 삽입하는 수술이야.

좌심방 좌심실 우심방 우심실 대정맥 폐정맥 요거 알지? 아. 문과 친구들에게는 미안해.

혈액내과 특성상 장기입원하는 환자들이 많고, 매일 하루도 안빠지고 피검사를 해야되기 때문에 심장에 관을 꽂아서 채혈을 쉽게 하기 위함이야.

이 수술을 안하면 매일 피뽑을때마다 팔에 바늘 꽂아서 피를 뽑아야하는데 그짓을 몇개월 몇년 한다고 해봐

어우 내가 바늘찔리는 건 수없이 해봤는데도 그건 좀 싫다.


사실 수술도 아니지 시술이라고 불려야 할 정도로 간단한 수술이야.

그냥 뭐 가슴에 구멍좀 뚫어서 혈관에 튜브 연결한다고 생각하면 돼.

부분 마취를 하고 하는데 할 때는 별로 아프지 않아. 근데 하고 나서가 좀 아파

이게 수술한 후 에 마취가 풀리는 데 거기까진 뭐 괜찮아. 근데 지혈을 해줘야한단 말이지.

그래서 무거운 걸 가슴위에 올려놓고 누워있어. 난 그때 쫌 아프더라.

근데 이걸 하고나니까 정말 편해. 바늘을 꼽는 대신 가슴에 연결된 관 뚜껑열고 피 뽑으면 되는데 하나도 안아파 느낌도 거의 없고.

이 히크만은 내가 퇴원해서 골수이식까지 한 이후에도 몇개월을 더 달고 다녔지.


그렇게 바늘을 꼽지 않고도 가슴에 연결된 관에 수액도 맞고 약도 맞고 그러지. 

히크만과 함께 그 수액 걸어놓는 폴대?는 내 그림자 처럼 내가 어딜가든 항상 따라다녔지.

그렇게 나는 6인실에서 항암치료를 위한 준비를 했어. 뭐 나는 준비랄 것도 없지. 간호사들이 다하고 나는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항암치료는 관해라는 과정을 거쳐서 진행을 해.

혈액내에 암세포를 다 죽이는 거지. 항암약을 투여하면 이 세포들이 다 죽는거야. 문제는 몸에 필요한 좋은 것들도 다 죽인다는 거지.

이게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머리도 빠지게 되는거고.

보통 관해를 유도시킨다고 말하는데, 혈액내의 암세포를 모두죽여 완전관해를 시키는게 1차 목적이야.

그니까 나쁜거 좋은거 가릴거 없이 다 죽여서 내 혈액을 초기화 시킨다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새로운 피를 만드는거지.

그러면 건강한 혈액만 남기 때문에 치료가 되는거야.

이 과정을 몇 번에 걸쳐서 하는데 그 이유는 한 번으로는 완전관해가 되지않아.

미관상으로는 다 죽인것 같지만 진짜 끈질긴 암덩어리들이 남아있어. 이놈들이 끝까지 살아남아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부활하지.

그렇기 때문에 1차 2차 3차 ... 이렇게 여러번 반복하는 거야. 최종적으로는 골수 이식을 하고.


입원을 하고 나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어.

백혈병에 걸렸다고. 남의 얘기를 하는 것 처럼 아주 덤덤하게 말했지.

그러면 주변 지인들이나 친구들 반응이 어떤지 알아?

처음엔 다들 안믿어. 거짓말하지마 이시키야 뭐 이러거나 장난하지말라고 하거나.

진짜라고 몇번이나 말하면 그제서야 진짜냐고 진지하게 묻곤 했지.

그 때 친구들 반응이 나름 재밌었는데 말이야 ㅎㅎ.


다음편엔 무균실에 가서 치료받는 얘기를 할게.

계속 봐주는 친구들 거듭말하지만

" 정말 고마워 "

 

제일 왼쪽부터 먹어도 되는 음식, 상의하고 먹어야 하는 음식, 먹으면 안되는 음식 순

무균실

나는 이제 항암치료를 하기위해 무균실(20층)로 올라갔어.

그니까 무균실에 대해 먼저 얘기 해줄게.

무균실은 말그대로 균이 없는 병실이야. 그렇기 때문에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아무나 들어갈 수 없지.

무균실에 가는 이유는 항암제를 맞으면 면연력이 0가 되기 때문이지.

정확히는 백혈구랑 호중구 수치가 0이되기 때문인데 그렇게 되면 면역력이 바닥을 치기때문에 균이 없는 병실로 가는거지.

호중구는 백혈구랑 비슷한놈이라고 생각하면 편해. 보통 백혈구 수치의 40~60퍼정도의 수치를 가져.

무균실 안에 들어갈때는 마스크는 무조건 필수야. 병실에서는 괜찮은데 복도만 나와도 간호사가 마스크 쓰라고 해.

입구에서 겉옷과 신발은 벗어야되고 가져온 소지품은 전부 소독을 한뒤에 손을 씻고 들어가지.

소독과정을 거쳐온 물건만 반입할 수 있어. 책 종류는 간호사에게 맡기면 전문적으로 소독처리를 하고 나한테 줘.

게다가 보호자도 병실에 상주 할 수 없어. 항암치료를 하는 중에는 환자 홀로 무균실에서 지내야해.


그리고 면회도 하루 단 한번이야.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 주어진 시간 딱 한 시간만 면회 가능해.

그 시간이 지나면 세이프 가드가 와서

"면회 끝났습니다."

라고 말하며 나가라는 말을 대신하지.

그 외에 환자를 만나고싶은 사람들은 인터폰으로 면회가 가능해. 

그 왜 영화나 드라마보면 교도소에서 투명한 창 앞에두고 인터폰으로 전화하는거 그거

그렇게 면회를 해.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단체로 무균실에 오면 그렇게 얘기하지.

사실 진짜 아픈 환자들한테는 면회 안가는 게 더 나을 수 있어. 좀 아프면 면회가 고마운데 어지간히 아프면 그것도 싫거든.


사실 외로운 것 보다 심심해. 그것도 정말 엄청나게. 젊은이는 나밖에 없는데다가 병실에서 딱히 할 것도 없으니 심심할만 하지.

근데 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항암치료를 받는 중에는 너무 힘들기 때문에 애초에 사람들이 거의 말이 없어.

하루 종일 아무말없이 누워있는 사람도 많고 아무튼 정말 정말 조용해.

식사도 거의 안 해. 아니 못한다고 봐야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온 식사를 몇 수저 먹고 그대로 반납해.

아예 안먹고 영양제로 대신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야. 항암치료를 하게 되면 입맛이 정말 없거든.

이게 그냥 평소에 입맛이 없다~ 는 수준하고는 비교 못할 정도로 아무것도 먹기가 싫어.

그래서 보통 절반 이상은 영양제로 대신하지. 나는 1차 때는 그래도 뭘좀 줏어먹은것 같긴 해.

앞에 할아버지가 건강해서 그런지 밥잘먹는다고 그렇게 말한 걸 들은 기억이 있거든.


병실에서 하루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줄게.

전에도 말했듯이 혈액내과의 환자들은 보통 매일 혈액검사를 해. 보통 히크만으로 채혈을 하고

일주일에 한 두번은 팔에서 뽑아가지. 팔에서 뽑는게 더 정확한가봐.

채혈은 보통 새벽에 5시~6시 이쯤에 해. 졸려 죽것는데 와서 "채혈 할게요~ "하면서 뽑아가.

그리고 몸무게도 재야돼. 몸무게를 재서 몸무게가 많이 늘었다고 생각하면 이뇨제를 놔서 강제로 소변을 보게 해.

 이뇨제 맞으면 진짜 20분마다 한번씩 화장실 간다. 맞기 싫어서 살찐거라고 하는데 소용없어. 

그리고 하루에 5번 정도 체온검사 혈압검사를 해. 그냥 심심할 때 마다 한 번씩 검사하러 온다고 보면 돼.

 대소변량 체크도 해야돼. 하루에 얼마만큼의 배변활동을 했는지 종이컵 1컵을 기준으로 매일 알려주지.

또 식사량도 체크해가. 나오는걸 체크하는데 들어가는 걸 체크안할리가 없지.

식사는 얼마나했는지, 밥은 얼만큼 국은 얼만큼 반찬은 다먹었나 얼마얼마 먹었다고 보고해야돼

기록하는 용지가 있어. 밥을 좀 못먹는다 생각하면 영양사랑 얘기해서 영양제를 달아주지.

청소도 하루에 한 번 꼭 하고 3일에 한 번은 베개랑 시트도 갈아주지. 

샤워도 최소 3일에 한 번은 해야되는데, 진짜 몸을 못가눌 정도로 아프면 그마저도 못하지.


또 일주일에 한 번은 X-ray 촬영하러 밑으로 내려가.

뭐 검사하거나 그럴 때 무균실 밖을 벗어나야 할때는 이동을 도와주는 사람이 와. 뭐라고 불렀었는데 까먹었네.

아무튼 그분이 오셔서 휠체어에 태워가지. 난 다리가 멀쩡하지만 걸어가는 일이 거의없어. 휠체어가 모자라거나 그럴 때만

"걸을 수 있어요?" 

라고 물어봐서 대답하면 가끔은 걸어 내려가기도 해. 물론 이때도 마스크는 필수지.

아 일반병실에서는 내려가는데 무균실에서는 무균실 안에서 X-ray 검사를 해.

무균실 안에 들어오면 백혈구가 정상수치로 회복되기 이전에는 어지간하면 안나가. 


뭐 이렇게 환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리해줘. 감시가 아니고 관리. 돌봐주는 거지

면역력이 바닥일 때는 이렇게 철저하게 감염관리를 해줘야돼. 그렇지 않으면 정말 큰 일 나는 수가 있거든.

이 때 감기가 걸리면 폐렴으로 발전하고 잘 낫지도 않아서 정말 관리 잘해줘야돼.

근데 균이 없어서 그런가 피부는 정말 좋아지더라 ㅋㅋㅋ 

원래 피부가 나쁜 편은 아닌데 그 때는 더 꿀피부 된 것 같아.

그리고 20층이라 그런지 전망도 꽤 괜찮더라. 환자들 심심할까봐 피아노도 있고 런닝머신도 있어.

치는 사람 거의 못봤고 머신타는사람도 거의 못봤지만 말이야 

내가 좀 뭔가 감옥처럼 막 그렇게 쓴것 같지만 무균실 생활도 나름대로 뭐 나쁘지 않아. 괜춘해

밥은 맛 없지만 말이야. 멸균식을 먹어야 하거든.

면역력이 낮기 때문에 감염의 우려가 있는 음식은 절대 안돼.


다음편 부터는 본격적으로 항암치료 얘기를 해볼게.

4편이나 썻는데 아직 항암치료 시작도 안했네. 뭐 천천히 쓰면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  

1차 항암치료

그렇게 무균실에서 항암치료를 시작했어. 항암약은 사람마다 다르긴하지만 보통 3일맞고 쉬고 5일맞고쉬고 뭐 이렇게 진행해.

어떤 병이냐에 따라 더 쌘 항암제를 맞고 기간도 각각 다르지. 

항암제를 맞으면 머리가 쑥쑥빠지기 때문에 머리를 깎아.

나는 머리를 미리 깍았더니 그게 조금 자라서 그 머리카락들 마저 다 빠지더라.

정말 베개가 쌔까매질 정도로 많이 빠져. 샤워기로 머리에 물을 대고있으면 머리카락이 물에 씻겨내려가는 걸 계속 볼 수 있지.

나는 남자라서 머리 깎는거에 별로 개의치 않았는데, 간호사들 말을 들으니 여자는 되게 서러운가봐.

아무튼 그렇게 머리를 깎고 항암치료를 하지.


글쎄 항암치료가 '아프다'는 말하고는 좀 맞지 않는것 같아.

뭔가 날카로운 것에 베이거나 맞거나 그럴때 아프다고 말하는 거지 항암치료는 그게 아니거든.

'힘들다' 라고 표현해야 맞는 것 같아. 나는 2차 치료때는 좀 괜찮았던것 같은데. 1차가 정말 힘들었던것 같아.

2차때는 밥을 먹었는데 1차 떄는 입맛도 없어서 밥도 안먹었어. 영양제로 식사를 대신했지.

제일 힘들었을 때는 누워있는 것도 힘들 때가 있었어.

이 힘들다는 느낌을 표현하자면 몸살감기 걸렸는데 끝판왕급 몸살감기라고 생각하면 돼.

침대에 눈감고 가만히 누워있었는데 빙글빙글 도는 느낌을 받았지.

그때 한번 친구가 면회온적있었는데 나중에 친구가 그 때 유리벽 너머로 내모습을 보는데 척 봐도 엄청 힘들어 보였대. 


이렇게 항암제를 맞으면 백혈구, 호중구 수치가 0으로 떨어져.

면역력이 0인 상태가 되는거지. 그렇게 암세포들을 다 죽인다음에 다시 호중구를 정상수치로 회복한다음 퇴원을 해

그런데 전에도 말했듯이 잔존해있는 암세포를 싸그리 죽이기 위해 이 치료과정을 반복하지.

1,2개월 텀을 두고 항암치료를 반복하는 거 같아.

이 과정에서 혈소판이나 적혈구가 정상수치 이하로 떨어지면 계속 수혈을 해.

이 시점이 바로 헌혈증이 필요한 시점이야. 친구들과 지인들이 하나하나 모은 헌혈증이 이 때 사용되는 거지.

난 50장 넘게 받은 것 같은데, 다 썻는지 안썻는지 기억이 안난다. 난 그나마 다른사람들보다는 적게 맞은 것 같아.


호중구 수치를 정상수치로 회복하려면 그냥 마냥 기다리는 방법도 있지만

보통은 촉진제를 맞아. 백혈구 촉진제를 맞지. 아프다고 소문이 나있는 것 같은데

골수검사랑 비교하면 애교수준이야. 그냥 뭐 독감주사 한방 맞는다고 생각하면 돼. 약간 뻐근한 정도?

왼팔 오른팔에 하루에 한번 씩 번갈아가며 맞지.

위에 올린 사진이 내 수치를 엄마가 기록한 사진이야. 

회복되는 기간은 사람마다 달라. 어떤사람은 금방 회복되는가 하면 어떤사람은 또 엄청 오래 걸리기도 하지.

수치가 올라갈 때 까지 퇴원할 수 없어. 빨리 집에가고 싶어서 얼른 수치가 회복되기를 바랬지.

회복이 안되서 한달이상 있는 사람도 있어. 특이한 케이스지 언제회복될지도 모른채 기다리는 거야. 두렵겠지.


나는 그래도 1차 항암치료는 무사히 잘 마쳤어.

그리고 관해도 매우 잘되서 혈액내 암세포를 찾아볼 수 없었지.

그런데 2차 항암치료때 문제가 생겨

아주 큰 문제가 생겨서 3년이 지난 지금도 고생하고 있지.

아마 평생 갈 것 같아. 

소곡주

1차 항암치료를 마치고 2차 항암을 위해 집에서 휴식기간을 가졌어.

그리고는 때가 되어서 병원으로 향했지.

2차 항암도 1차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진행했어. 마찬가지로 무균실에서 항암제를 맞았지.

입맛이 없거나, 구내염이 생기거나, 구역, 구토증상이 있거나 설사를 하거나 등등

이런 것들은 1차 때도 다 겪었던 것들이니 뭐 그런대로 참을만 했어.


그런데 어느날 척수항암을 좀 지난 시점에서 발이 좀 저리고 감각이 둔해졌어.

척수항암은 척수쪽에도 항암주사를 맞는거야. 옆을 보고 새우잠 자세를 취해서 등에 주사를 맞는 거지. 

항암치료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손, 발 저림,떨림 등이 있기 때문에 발이 저리는 것은 그냥 그런가 보다 했지.

그런데 다음날이 되니 감각이 둔해지는게 발목쪽 까지 올라왔어.

그렇게 하루에 조금씩 올라오더니 무릎 위까지 올라와 다리를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졌고 감각도 많이 둔해졌어.

그래서 신경외과랑 협진해서 문제가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지.


그런데 뭐가 문제인지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았어.

각종 검사란 검사는 다받아봤어. 초음파 검사부터 전기적인 반응을 보는 검사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MRI도 두번이나 받았는데

명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지. 다만 MRI 상으로 경추(척수에서 목부위해당하는 부위)쪽에 아주 미세한 문제가 있는 것 같았어.

의사는 척수염과 비슷하게 보이기는 한데 너무 미세하고 뚜렸하지 않아서 척수염이라 단정짓기 힘들다고 말했지.

이 문제 때문에 나는 호중구 수치가 정상으로 회복됐는데도 퇴원을 하지 못했어.

무균실에서 일반병실로 내려가 병원생활을 계속할 뿐이었지.

의학계에서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는 스테로이드라는 소염진통제를 고용량으로 써봤지만 그 역시 큰 효과를 보지 못했어.

좋아지기는 커녕 결국에는 배꼽 조금 아래까지 힘을 잃어버렸지.


그래. 하반신이 마비되고 만거야.

완전 마비는 아니었지만 거의 마비나 다름없었어.

뜨거움, 차가움, 통각등의 감각등은 남아있었지만, 누워있는 상태에서 한 발을 위로 드는 것 조차 힘들었지.

다리를 거의 움직일 수가 없었어. 부모님의 도움없이는 화장실가는것 조차 힘들었지.

침대 바로 옆에 놓인 휠체어로 옮기는 것조차 온전히 팔힘을 이용했으니 말이야.

설상가상 하반신이 기능을 잃어서 그런지 장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설사를 했었지.


그때 정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어.

혹시 이대로 영원히 못낫는게 아닌가. 영영 앉은뱅이로 살아야하나. 

근데 내가 멘탈이 좋아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낀 감정은 좌절이나 슬픔 따위가 아니었어.

대신 각오를 다짐했지.

내가 다친건 머리가 아니고 다리 뿐이었으니까.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나는 생각했어. 내가 앉은뱅이가 된 채 생활하게될 내 모습을 상상했지.

그리고 각 상황마다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곤 했어.

이 상황에는 이렇게해야지. 이 땐 이렇게 해야지. 저 땐 저렇게 해야지. 

학교를 다니게 되면 친구한테 휠체어를 밀어 달라고해야지.

이제 두 다리를 못 쓰게 될지도 모르니 공부를 더 열심히해야지.

다리를 못쓰는만큼 머리를 더 쓰면 먹고살 순 있겠지. 다리를 쓰지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으니까.


신경외과로 유명한 아산병원에도 가봤지만 그쪽에선 정확한 진단은 아니지만 제일 가까운 진단은  역시 '척수염'이라고 말했지.

척수항암은 척수에 영향을 미치지않는다고하는데 우연히 척수염이 같이온건지 아니면 정말 거기서 뭐가 잘못됀건지는 아무도 몰라.

언제까지고 병원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린 일단 퇴원하기로 했어. 좋아질 때 까지 집에서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지.

나중에 담당교수님이 내린 진단명은 "신생물성 질환의 다발성 신경병증" 이었어.


그렇게 나는 2차항암 후에 하반신이 마비되어 집에서 생활했어.


*아래는 내가 그 당시에 느낀 감정을 기록으로 남긴걸 그대로 옮긴 거야.

2/17 (월) 18층 215병동 화장실옆 중간자리
벌써 두번째 항암치료도 끝에 다다랏다. 항암제를 5일맞고 그이후 촉진제를 12일정도 맞아 호중구수치는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다. 하지만 다른곳에 말썽이 잇었다. 그것은 바로 다리. 촉진제를 맞을무렵부터 서서히 다리감각이 떨어지고
힘이빠지더니 이제는 수치가 회복되엇는데도 불구하고 부축해도 걷기가 힘들다. 정상적이라면 어제나 오늘쯤 퇴원했어야
하는데 다리 때문에 퇴원이 언제일지 모르겠다. 빨리 집에가고싶다. 원인을 알아보려고 신경과에서도 몇번왔고 MRI도
오늘까지 총 3번이나 찍었지만, 의사들도 뚜렷한 원인을 모르겠단다. 환자인 나도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도 답답한 지경이다.
지금 심정은 내일 갑자기 기적처럼 낫고 퇴원하여 3차항암치료 준비를 편히 했으면 좋겠다는것. 하지만 이대로라면
그때까지 집에못갈 수도 아니 그이상으로 병원에서 살 수 도 있다는 것. 이미 병원침대는 단순히 침대가 아닌 내 책상,
쇼파, 식탁 등 모든 것이 되어버렸다.
오늘 고모가 병문완을 왔다. 19층 무균실에 있을땐 면회가 자유롭지 못했지만, 수치가 회복되어 내려온 이곳은 면회가
자유롭다. 수치도 회복되었기 때문에 오늘부터 멸균식이 아닌 일반식을 먹어도되고 외부음식의 제한성도 느슨해졌다.
고모가 고기반찬을 해왔다. 맛은 맛있다. 고모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그런데 고모가 가져온 것은 고기반찬
뿐만이 아니었다. 고모가 어제 아빠와 통화한 내용을 엄마가 자리를 잠깐 비웠을 때 얘기해주셨다. 아빠랑 통화를
하는데 아빠가 그러시더라. 자기는 아들 평생 먹여살릴거니까 걱정하지말라고.. 아들이 훌륭한 인물이 되지 못해도
좋다고. 평생 아빠의 '아들'로만 있어달라고 그렇게 해달라고..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아빠가 많이 걱정하고
계신다고 전화도 자주못하는게 울음이 날까봐 그러신다고 .. 고모가 그렇게 얘기해주셨다. 그말을 듣고 안울려고
했는데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을 막을 수없었다. 주륵주륵 비오듯이 눈물이 나는걸 참으려고 애써 봤지만
소용없없다. 그때 아빠 목소리를 들었다면 아마 펑펑 목놓아 울었을 것이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제일 첫번째는
빨리나아서 건강해야겠다. 둘 째는 남부끄럽지않게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당당한 아빠의 아들이 되는 것..
지금 일하시면서 감기도 걸리셨다는 아빠의 인자한 얼굴이 생각난다. 빨리나아서 알바남은돈으로 근사한
저녁식사 대접해드리고 싶다.
고모 정말 감사합니다. 겉으로 표현 못하시는 아빠의 마음을 전심으로 느끼게 해주셨어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0)

Designed by CMSFactor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