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허경영. 미국 유일의 황제 '노턴 1세' ( Norton I )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바로 미국의 유일한 '황제폐하'로 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노턴 1세의 이야기 입니다.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았으며, 누구도 약탈하지 않았고, 그 어떤 나라에게도 손해를 입히지 않은 점. 

그 점에서 그와 같은 부류(다른 군주)들에 비해 훨씬 나은 인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샌프란시스코 경찰국장 패트릭 크롤리


That he had shed no blood; robbed no one; and despoiled no country; which is more than can be said of his fellows in that line - Patrick Crowley


그의 일대기를 살펴보면, 그는 약간의 정신이상자이며 과대망상에 걸린 환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는 자비롭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으며 모든 종교를 평등히 대하고 인종차별을 금지했으며, 앞길을 예견하고 썩어빠진 정치를 규탄했던 선각자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영국 런던 출신으로 ,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업을 벌여 25만달러( 현재 가치 환산 기준 약 630만 달러. 원화로 약 71억원 )를 모으고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청나라에서 발생한 '태평천국의 난' 때문에 쌀값이 9배 이상으로 폭등하자 전 재산을 올인하여 쌀을 사 모으고 매점매석을 꾀합니다만.... 이후에 난데없이 페루쌀이 수입되면서 쌀값이 폭락하는 바람에 전 재산을 날리고 잠적해 버립니다.... ( 선물투자하다가 망한 주갤럼을 보는 것 같은...ㅠㅠ )


1859년 9월 17일. 허름한 육군 군복의 차림을 하고 정신이 약간 불안정한 상태로 노턴은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지역 신문인 블리턴에 찾아가 편집장에게 자신을 ‘미국의 황제 노턴 1세’라고 선언하는 만행을 저지르게 됩니다만,


이를 재미있어 하면서 신문 판매 부수를 좀 늘려보려는 속셈을 가진 편집장이 그의 선언에 동의하며...


신문 1면에 황제 즉위 기사를 싣게 됩니다. -_-


그리고 1주일 뒤 노턴 황제는 신문을 통하여 놀라운 내용을 발표하게 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미국 정부의 해산을 명령한다. 버지니아 주지사와 고위 관리들은 썩어도 너무 썩었다.


 - 현재 대통령의 대통령직을 박탈하고 의회를 해산한다.


 - 따라서, 황제가 친히 정사를 돌본다


그런데, 이런 발표 내용에 의외로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기뻐하고 환영합니다.

당시의 미국은 고위 관리직들의 부정부패가 들끓고 있었고 사람들은 이런 현실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당시의 미 합중국 대통령은... 그 유명한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_- 


(링컨이 대인배이긴 하군요... 우리나라 같으면 국가 내란죄 적용해서 사형시켜 버릴지도.... 누구누구 처럼 말이죠...)


어찌되었건 샌프란시스코의 시민들은 노턴 1세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고, 자발적으로 세금을 냈으며, 의복을 지어다 바치고, 실제로 나중에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만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지만...


1880년 1월 8일, 강연하러 가는 도중 길거리에서 급사를 하게됩니다.


이 때,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사에서는 "폐하(노턴 1세)께서 붕어(崩御)하시다."라는 대서특필과 함께 호외를 전 도시에 뿌려댔으며, 모든 상점들이 황제 폐하의 붕어소식을 듣고 문을 닫아 조의를 표했고, 


무려 3만 명의 조문객이 샌프란시스코의 거리를 가득 메웠는데 부자부터 거지까지 신분과 빈부격차를 가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 ( 이 당시 샌프란시스코 인구는 고작 23만명이었습니다. )


1880년 1월 10일이 장례식이었는데 이 무슨 조화인지 10일과 11일 연속으로 일식이 발생했다고 하니 하늘도 이를 슬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요.


황제 노튼 1세의 묘비.

'미 합중국의 황제이자 멕시코의 수호자' 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미국 정부에서 인구조사를 할 때에도

노턴 1세의 직업에는 당당하게 ' 황제 '라고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의외로 그의 장례식은 샌프란시스코 시 의회장으로 치러졌었고, 아쉽게도 결혼은 하지 않았기에 후손은 없었습니다.


어쨋든, 그의 업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무려 19세기에 비행기 연구를 위한 기금조성


2. 세계정부 제안 (UN과 같은 형식)


3. 현수교 공법으로 샌프란시스코만에 다리를 지어야된다고 주장

-> 당시 아프리카에서만 사용하던 현수교 공법으로 샌프란시스코 만에 다리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

그리고, 실제로 그가 제안한 공법으로 다리가 건설되게 되는데... 그 다리가 바로

그 유명한 베이 브리지(San Francisco–Oakland Bay Bridge)입니다



그리고 이 다리의 입구에는 하나의 동판이 붙어있는데



이런 내용이 써있습니다.


"여행자여, 잠시 걸음을 멈추고 노턴 1세 폐하께 감사하라."


"미국 황제이자 멕시코의 보호자인 폐하께서는 


예언적인 지혜로 샌프란시스코만에 다리를 놓을것을 명하셨다."


4. 모든 종교를 평등하게 대우


5. 모든 인종을 평등하게 대우

-> 그 당시 흑인은 가축취급을 받는 노예였었고, 황인종은 사람취급을 못받는 때였습니다. 

이런 때, 인종차별을 철폐하자는 말은 개혁급의 발언이었죠.


그 외, 실제로 '나중에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국채를 발행하기도 했는데, 그 당시에도 인기가 많았지만, 지금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없어서 못구하는 초 레어 아이템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국채는 일반 시민들이 제공하는 시설을 이용할 때 현금 대신 지급되었다고 하는데요, 예를들면 극장, 식당, 옷가게 등에서 시민들이 '공짜로' 해 주는 대신 이런 국채를 지급한 것이죠.



금액은 10$ 입니다만,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약 250$ 정도 되는 금액이지요.



그리고, 1861년에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각각 북부와 남부의 수장이었던 미 합중국의 애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남부동맹의 제퍼슨 데이비스 대통령을 소환하는 편지를 쓰기도 합니다만, 물론 둘은 쿨하게 씹고 전쟁을 치러버리죠.


다만 링컨은 노턴 1세를 알고 있었는지,

폐하의 소환에 응할 수 없는 이유를 정중하게 편지로 써서 보냈다고 합니다. ㅎㅎㅎ

게다가, 노턴 1세의 통치법(?)은 무위지치(無爲之治)의 일종으로, 중국의 사상가 노자가 상선약수(上善若水)와 더불어 최고의 통치라 일컬었던 방법이지요.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스리는 방법. 즉, 순리에 모든 것을 맡기고 민정에 개입을 일절 끊은 채로 세상을 관망하는 것을 자신의 정치에 접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노턴 1세는 미국, 혹은 샌프란시스코의 정계에 직접적으로 투신하거나 의견을 제시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모두가 그의 이 별난 행보에 발을 맞추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노자 철학의 진수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이런 이야기는 학술적으로 볼 때가 가치있는 이야기이고,


실제로는 미국인들이 당시에 자신들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자부심이 묻어났던, 시 전체가 참여한 하나의 유쾌한 풍자였으며 일종의 놀이였던 셈입니다.


'아무도 죽이지 않고, 아무도 추방하지 않고, 아무것도 빼앗지 않는, 조금 정신은 이상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고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은' "자칭 황제" 가 '함부로 사람을 죽이고, 추방하고, 재산을 빼앗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유럽의 군주들보다 못할 것이 없다고 여긴 것이지요.


Ps. 한 풋내기 경관이 원칙주의에 입각하여 그를 체포하자 격분한 시민들과 언론의 항의가 빗발쳤고 샌프란시스코 경찰서장이 직접 그를 풀어주고 공개 사과했으며 시 의회에서 노턴 1세에게 사절단을 보내 사죄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에 황제 폐하께서는 그 일을 잊어버리기로 했다면서 자신을 체포한 경관을 사면한다고 선언하는 관대함을 보여주었지요. 이후 샌프란시스코의 모든 경찰들은 노턴 1세가 지나갈 때마다 경례를 바쳤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노턴의 행동은 영감의 원천이 되어왔으며, 1974년 이후 샌프란시스코 외곽에 있는 그의 무덤에서는 매년 기념 예배가 열리고 있습니다. 


비록 그의 삶의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잊혀졌을지 모르지만, 그의 이야기는 문학작품을 통해 여전히 남아있다. 노턴의 '재위 기간' 동안 샌프란시스코에 함께 살았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노턴을 모델로 한 왕 캐릭터를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등장시키기도 합니다. ( 악당으로요... )



마지막으로, 아직까지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매년 2월 14일을 '노턴 1세의 날'이라고 하여 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이 날에는 샌프란시스코 관광 안내를 전담하는 여행 가이드는 노턴 1세의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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