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상식 - 위인전 편, 동심파괴




김정호

대동여지도 만들다가 잡혀들어가서 갖은 고초를 겪고는 죽었다... 라는건 거짓말 -_-

군사 증강에 관심많던 대원군이 군사와 직결되는 지도 제작자를 죽일리가 없지요. 제가 어렸을 때 배운 교과서에도 어떻게 되어있었냐면,

김정호가 수레를 끌고 발품팔아서 백두산을 몇번씩이나 오르내리면서 지도를 만들어 갖다 바쳤는데, 대원군이 열받아서 옥에 가두고는 죽여버렸다. 후에 일본이 이 가치를 알아보고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이때 정밀도를 확인하니 놀랍더라... -_-

이는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조선어독본의 책 내용입니다. 그 책을 누가 썼냐고요? 당연히 조선총독부지요 ㅡ,.ㅡ


나무위키에 정리가 잘 되어 있으니 일부를 가져와 봅니다.

원문링크 : 나무위키 - 김정호 ( https://namu.wiki/w/%EA%B9%80%EC%A0%95%ED%98%B8 )


 이 이야기의 근원은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어 독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최초는 지도에 관심이 많았던 최남선의 '고산자를 회함'인데... 그 최남선이 조선총독부의 조선어 독본에 참여했기 때문에 거기서 거기다. 내용인즉슨 김정호가 지도 제작과 지리학에 재능이 많았으나 국가는 지도 제작에 전혀 뜻이 없어 김정호 자신이 직접 전 국토를 답사하여 지도를 만들었지만, 쇄국정책을 취하던 대원군이 이에 분노하여 나라의 기밀을 누설했다며 대동여지도를 불태우고 목판을 없앴다는 줄거리. 조선어 독본에서는 후일담도 있다. 일부의 지도가 남아 있었고 러일전쟁때 일본인에게 입수돼서 구로키 장군이 압록강에서 러시아군을 물리칠때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즉 조선인들이 버린 김정호의 가치를 일본인이 발견해서 러일전쟁에 기여했다는 이야기, 당연히 우리나라 위인전에서는 이 부분은 빠진다 당연하지만 철저하게 구라다. 일단 대동여지도는 김정호 개인이 만든 것도 아니라 관인으로써 만든 것이기도 하고, 대원군이 제작자를 잡아죽일 정도로 화가 났다면 이미 대동여지도는 불태워 없어졌을 것이다. 또한, 대원군은 군사력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정확한 지도야말로 근대 군사학에서 꼭 필요했을터. 절대로 태웠을 리가 없다. 관련 내용을 잘 정리한 역사만화. 보면 좋다. 그리고 고문당해 죽었다면 '물고'라고 표현해야 하는데 그의 죽음에 대해 기록한 기록은 모두 그냥 죽었다고만 나온다. 딱히 정치에 휘말리지 않고 조용히 지내다 자연사한 것으로 추정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렇게 날조된 이야기에 대해서 처음으로 체계적인 비판을 가한 사람은 이병도라는 점.


조선은 지도 제작에 국가적인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는 중앙집권의 강화와 북방개척 등의 정치, 군사적 목적에서였다. 또한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과 국학자들을 통해서 경제적, 실용적 관심에서의 지도제작도 이뤄졌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도 이런 실학자들의 실용적 관심에서의 지도제작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황희

뛰어난 정치가인 것은 맞지만 부패한 관료였음에도 불구하고 청백리로 미화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청백리는 아니었지만, 당대 관료들과 비교해서 특별히 부패한 관료는 아니었습니다. 

즉, 적당히 챙겨먹을건 챙겨먹었다는 것. -_-;;;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승의 지위에 있으면서 몇 번 사고를 크게 친게 문제가 됩니다.

예를 들면...

특히 사위인 서달이 살인을 저지르고 이를 덮기위해 맹사성과 조작을 하다가 세종대왕에게 걸려서 관련자들이 줄줄이 곤장형 +  유배크리...


일화에 나오는 "비가 오는 날이면 집 안에서 우산을 쓰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거짓말 입니다.

이는 황희를 청백리로 묘사하던 연려실기술의 영향.


Ps. 하지만, 일은 정말 잘하고, 뛰어난 정치가였다고 생각됩니다.

 



장영실

 일단 세종의 눈에 띄어 발탁된 뒤 궁중의 과학자로서 많은 발명품을 만들어낸 것은 기록으로 남아 있는 사실인데, 

문제는 기록에 아예 없는 어릴적이나 관노 시절, 그리고 쫓겨난 후의 생활까지 창작해 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등용 과정에 있어서도 관료들이 하나같이 종놈을 관직에 임용하면 안된다고 항의하는 식으로 왜곡한다든지..... 

(좀 역경을 딛고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요?)

실제로 장영실 등용에 반대한 인물은 의견만 살짝 제시한 허조 정도이며 유정현, 조말생 등 대다수 관료들은 찬성했기에 장영실은 무난히 관직에 임용되었습니다.

또한 측우기를 장영실이 생각해내고 제작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거짓말 입니다.

일단 측우기를 만든 사람은 장영실이 맞지만, 그 생각은 엄연히 세자 시절의 문종의 발명품 입니다.

 

 

한석봉

서필이 아주 좋다고 널리 알려졌지만 그뿐...

관리에 들어간 이후부턴 영 이상한 항소문이나 쓰고 그래서 지방관리직으로 좌천 후 파직되었습니다.


애초부터 어머니는 떡썰고 한석봉은 글씨쓰고 해서 거기까지는 좋았지만,

진사시만 겨우 합격하여 사자관(寫字官: 공문서의 글씨를 깨끗하게 정리하는 하급관리)에 머물렀으며 선조가 글씨를 아껴 와서별제라는 관직을 제수하지만 대과에 합격하지 못한 자가 관직에 오르는 것은 부당하다며 참으로 야멸차게 까입니다.


예를 들면 사헌부에서 

"와서 별제(瓦署別提) 한호(韓護)는 용심(用心)이 거칠고 비루한 데다 몸가짐이나 일 처리하는 것이 이서(吏胥:이방)와 같아, 의관(衣冠)을 갖춘 사람들이 그와 동렬(同列)이 되기를 부끄러워하니 체직시키소서”


라는 상소를 올리는데 구체적인 비위사실이나 능력문제는 없고 사람이 찌질하다는 수준이라는 말이지요.


게다가 나중에는 가평을 말아먹는 지경으로 가서 탄핵되어 강원도(북한) 통천 현감으로 좌천된다


이때부터 삐딱선을 타서 임진왜란 공신의 교서와 녹권을 개판으로 써갈겨대다 1604년에 파직당하고 다음 해인 1605년에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명성황후 민씨

오래된 떡밥입니다. 성녀인가, 국고탕진 된장녀인가...

위인전 내에서는 거의 성녀취급을 하고, 고종을 허수아비로 만들 정도로 정치 감각이 뛰어나고, 백성을 살피는 국모라고 표현을 합니다만... 위인전을 읽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미안할 정도의 엄청난 미화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이 지탄을 받는 이유는 너무 편향된 시각만 적혀있다는 겁니다.

비록 많은 부분들이 아직도 논쟁거리이긴 하지만 말이죠.


참고하시라고 나무위키 링크 걸어드립니다.

참조링크 : 나무위키 - 명성황후민씨

https://namu.wiki/w/%EB%AA%85%EC%84%B1%ED%99%A9%ED%9B%84%20%EB%AF%BC%EC%94%A8



나무를 자른 정직한 조지 워싱턴의 이야기

위인전 작가 퍼즌 윔스가 위인전이 얇다고 생각해서 집어넣은 이야기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전기

철저히 유럽인의 입장에서 기술되었습니다.

최초 난파시 생명을 구해주고 보살펴준 원주민을 되려 붙잡아다 왕에게 성공 증표로서 갖다 바치고,

서커스와 시장에 구경거리로 내놓아 모조리 전멸해버린건 안나와 있습니다. -ㅁ-

또, 후에 콜럼버스가 수만명의 원주민을 참혹하게 살해한 일이나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다녀온 이후의 식민지화와 원주민 탄압은 철처하게 생략합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해 항해를 반대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선원들

애초에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고대 그리스 시절에 발견된 사실이다. 

그리고 항해자라면 경험적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거기다 이슬람의 학자들은 남극의 존재까지 인지하고 있었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생각해낸 아이작 뉴턴

좀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갑자기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생각해낸 게 아니라는 게 정설

여러 주장 가운데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가 사과가 떨어지는 거 보고 발견한 거 아닐까? 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증기가 나오는 주전자를 보고 증기기관을 고안한 제임스 와트

제임스 와트는 증기기관을 발명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개량한 사람일 뿐입니다. 

게다가 와트는 후배들을 가혹하게 조폭까지 고용하면서 아주 뭉개버린 악랄한 사람입니다.-_-!!!!

참조링크 : 위키피디아 - 제임스 와트

https://ko.wikipedia.org/wiki/%EC%A0%9C%EC%9E%84%EC%8A%A4_%EC%99%80%ED%8A%B8


샤를 드 골

개차반 인간성 및 68혁명으로 사실상 쫓겨난 것은 생략.

 


윈스턴 처칠이 인도 독립에 반대했단 이야기는 생략

당연히 쿠르드족 독가스 학살 명령 및 노르웨이나 이웃나라들을 협박한 일들 생략.

 


더글러스 맥아더의 언론플레이 생략

핵 투하 계획은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갑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독재자란 것도 생략

흔히 나폴레옹이 잠을 적게 잤다고 쓰면서 한국에서는 이걸 본받아야 한다고 온 국민에게 잠 안재우기를 강요 하는데

나폴레옹은 잠을 결코 적게 자지 않았습니다.

야간의 수면 시간이 2~3시간이었을 뿐, 1일 동안 토막잠을 잔 시간까지 합치면 최소한 6시간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불규칙한 생활 덕분에 불면증까지 겹쳤기에 적게 잤을 뿐이지, 노력과 근성으로 졸음을 참은 것은 결코 아니며, 

그런 부족한 수면으로 건강을 망쳐서 워털루 전투 같은 큰 전투에서 패인(敗因)이 되었다는 것은 철저하게 숨기고 있습니다.

 

 


노구치 히데요

어릴때의 사고와 컴플렉스를 극복한 세균학자로 묘사하였고,

실제로 일본인 중에서는 당당히 존경하는 위인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단 한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거짓으로 판명났으며, 현재 논쟁은 고의적으로 거짓보고를 했는냐인데,

고의성이 다분한 거짓업적이라는 쪽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헬렌 켈러

성인이 되어서 사회주의 및 페미니즘 활동을 한 내용은 한국에서 보기 불편한 내용인지라 이후는 통채로 생략했습니다.

언냐들 이거 나만 보기 불편해?

 

 

칭기즈 칸

중국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최소 수백만 정도의 인명을 희생시킨 사실은 생략됩니다. 

애초에 칭기즈 칸은 중국에 사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논과 밭을 뒤엎어서 목초지로 쓸 계획이었습니다..... -_-

 

 

토머스 에디슨

라이벌인 니콜라 테슬라를 비방하기 위한 전기의자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에디슨은 직류 찬양론자, 테슬라는 교류 제안자)


참조링크 : 나무위키 - 토머스에디슨 3.2. 니콜라 테슬라와의 갈등과 악의적 선전

https://namu.wiki/w/%ED%86%A0%EB%A8%B8%EC%8A%A4%20%EC%97%90%EB%94%94%EC%8A%A8#s-3.2


다만 몇몇 출판사에 그가 조수들을 가혹하게 다뤄서 조수들에게 교도소장이라고 능멸찬 별명으로 불리던 걸 실은 적은 있습니다만.

사실 에디슨의 위인전은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이 충격먹는 소재로 손꼽혔기 때문에, 이정도나마 수정이 이뤄 졌습니다.


그 밖에도 탄광업 및 시멘트 업체를 운영하기도 했는데 죄다 말아먹었고 에디슨 전광회사도 결국은 말아먹습니다.


또, 말년에는 자기 나름대로 영혼과 영계에 심취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된 발명품들을 몇 가지 만들었다고 하는 얘기가 있지만 실제로 남아있지는 않습니다만, 이 때 발명했다고 하는 것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영계통신기. -ㅁ-!!!!!!

하지만 사실은 에디슨이 만우절을 맞이해서 어수룩한 대중잡지 기자한테 구라를 깐 거였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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